플레이어 2024 | 가상 사용 후기 · 인터뷰 신예슬 | 평론가

가장 절친한 친구 중 하나가 운영하는 공연장에 ‘플레이어 2024’와 ‘사운드 테이블_부유하는 몸 2024’를 선물했어요. 도심 속에 위치한 작은 공연장인 이곳에는 두 개의 프로덕트가 꼭 필요한 것 같았어요. 먼저 ‘플레이어 2024’를 선물한 이유는 사실 이 공간에 가장 많이 머무는 사용자가 아니라 이곳에 찾아오는 아티스트들, 정확히는 음악가들을 위해서입니다. 도심 속, 떡볶이집과 학원을 지나 들어가야 하는 이곳 공연장에 들어서는 시간은 바깥 소리로부터 무조건 멀어지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 소리들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 곳입니다. 보통은 방음 설비가 완벽하게 잘 된 건물이라면 어떤 풍경의 소리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그런 과정을 느낄 수 있겠죠. 아주 구체적인 사람들의 목소리, 발소리, 움직임으로부터 비롯되는 온갖 소리들이 점점 먹먹해지고 뭉뚱그려지는 그런 과정. 하지만 그 공연장에 가는 길은 온통 구체적인 소리로 가득합니다.

‘플레이어 2024’는 사실 사라진, 혹은 곧 사라질 장소의 소리를 기록하는 프로덕트이지만 저는 한편으론 이 장치의 쓰임새가 그 반대로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 가까이 다가가서 듣는 장소의 소리를 찾는 여정이지만…. 그것이 멀어지는 특유의 방식, 어떤 덩어리째 뭉쳐진 상태로 남아있는 소리를 듣는 과정도 역으로 꽤 즐겁지 않나 싶어서요. 그런 의미에서, 구체적인 소리의 세계에서 떠나 추상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하는 공연장에서, ‘플레이어 2024’는 완전히 정반대의 의미로 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덕트 아주 가까이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가 점점 멀어지는 과정을 즐겨보는 거죠. 그렇게, 이제 어디도 아니게 된 장소의 소리를 뭉뚱그려 들어보는 경험… 그건 특별한 장소의 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마도 아니겠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도 어떤 ‘장소’가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도 그 어떤 새로운 소리나 구체적인 사건이 생겨날 수 있는, 또 다른 익명의 장소이지 않을까요?

‘사운드 테이블_부유하는 몸 2024’는 순전히 실리적인 이유에서 그곳에 선물한 물건입니다. 친구의 공연장은 그야말로 30명 남짓의 관객을 소화할 수 있는 소박한 공연장이지만 공연장 안쪽 깊이 있는 사무실과 무대 쪽의 음향이 명확히 분리되어 있어서 바깥 상황을 알려면 보통은 공연장에 들어가는 문쪽 가까이에 다가가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가끔은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그 소리를 듣지 못해서 바로 지나치게 되기도 하죠. 현장 상황의 분위기를 계속 파악해야 하지만 또 매번 CCTV를 보는 것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그럴 때 사무실에 머무는 사람과 바깥 공연장에 머무는 사람이 각각 두 대의 사운드 테이블을 귀에 대고 누워있다면, 큰 소리의 간섭 없이도, 그러나 무전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각 현장의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사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연주가 잘 되는가, 이런 것이 중요한 현장은 아니죠. 여전히 안과 밖, 어딘가에 사람이 머물고 있는가,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것은 작은 사건인가 큰 사건인가 등. 이런 사실들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캐치할 수 있겠죠. 현실의 소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그러나 소리의 방식으로, 공연장에서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사운드테이블’이 사실 꼭 소통을 위한 것만은 아니지만, 여기에서도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음악가들에게도, 그들이 듣고 있는 소리를 폭넓게 한번 일깨워줄 수 있다는 점에서 또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았고요. 음악가들은 지금은 재미삼아 써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이 한달, 두달, 세달까지 늘어난다면… 아마도 듣는 감각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