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2024 | 가상 사용 후기 · 인터뷰 피터 리 | 게임 디자이너

후니다 작가는 가방에서 꺼낸 물건을 카페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벽돌 정도 크기의 하얀 상자에 커다란 빨강색 바퀴 하나가 달려있었다. 바퀴는 지름이 12센치쯤, 두께도 6-7센치는 될 것 같았다. 두툼한 바퀴가 벽돌 한쪽으로 치우쳐 꿰뚫고 박혀 있는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기울어진, 거대한 외바퀴 수레 장난감 같기도 한 물건. 뭔가 익숙하고 친근하면서 낯선 그런 물건이 내 눈앞에 놓여있었다. 내가 물었다.

“뭐죠?”

후니다 킴이 나를 잠시 쳐다보고는 물건 위의 스위치를 누르자 ‘치이익’하는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아, 이 소리... 뭐지?’ 뭔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소리였다.

“바퀴를 그냥 굴려 보세요.”

후니다 작가가 말했다. 나는 조심스레 그 커다란 바퀴 위에 손을 얹고 바퀴를 굴렸다. 워낙 바퀴가 두꺼워 굴린다기보다는 뭔가 장치를 민다는 느낌이었다. 장치를 밀자,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물체가 스르륵 움직이기 시작했다.

“치지직…치익…치지직…”

바퀴가 구르면서 소음이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익숙했던 그 소음은 옛날 라디오 주파수 맞출 때의 그 소리 같았다.

“치직직… 치익…치…스…치…스…스스…스……”

커다란 바퀴가 1/3쯤 돌았을 즈음 소음이 소리로 바뀌었다. “스… ㅊㅊㅊ…치익…치지직…” 바퀴를 더 굴리자 다시 소리가 소음으로 바뀌었다. 바퀴를 계속 굴렸다. 어느 지점에서는 소음이 소리로, 때로는 소리가 소음으로 바뀌었다. 라디오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었을 때 들리는 그 소리였다. ‘이건 뭐지? 주파수인가?’ 나는 작은 카페 테이블 위에서 반복적으로 바퀴를 앞뒤로 굴렸다. 커다란 주파수 다이얼만 남아 있는 묘한 라디오인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주파수 사이를 오가며 소음 사이의 소리에서 소리로 이동했다. 그러다 문득 한 소리에서 멈추었다. 발견되는 소리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말로 묘사하기 어려운 그 소리는 소음이 아닌 소리였다. 고개를 숙여 소리가 나오는 바퀴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일정한 소리가 무엇인가 느리게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느린 소리의 시간이 조금씩 바뀌는 듯했다.

“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어떤 장소의 소리였다. 백색 소음 같던 그 소리는 어떤 장소의 소리였다.

나는 ‘플레이어’를 손으로 들어보았다. 이 네오 프로덕트는 묵직한 무게감이 있었다. 묵직하지만, 문진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느낌과는 다른, 기분 좋은 무게감이라고 할까? 바퀴를 굴릴 때 느낀 무게감과는 또 달랐다. 나는 하얀 벽돌 같은 박스 부분을 왼손으로 받치고 조심스럽게 커다란 빨간색 바퀴가 나를 향하도록 들었다. 틀림없이 딱딱하고 차가운 플라스틱 같은 오브젝트였다. 그런데 이건 뭘까. 작은 아기 고양이를 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작은 아기 고양이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빨강 바퀴에 다시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안듯이 손을 얹었다. 그리고 쓰다듬듯 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 쓰다듬듯……

다른 소리에 주파수를 맞추고 멈추어 다시 귀를 기울였다. 다시 천천히 흐르는 시간처럼, 귀 기울이면서 듣게 된 소리는 나를 어떤 장소로 데려갔다. 주파수를 바꾸며 장소와 장소 사이를 오가다 하얀 박스 위에 작은 화면이 있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 작은 동전 두세 개 높이의, 틈새 같은 화면이었다. 화면을 보려고 고개를 숙여 네오프로덕트를 가까이 안아 들었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을지로3가 ○○○

소리에 귀 기울이며 화면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화면에 글씨가 나왔다. 장소, 소리의 장소였다. 주파수를 바꾸고 소리를 찾아 귀기울이며 시간이 조금 지나면 소리가 장소로 바뀌며 화면에 장소가 문자로 나타났다. 이 플레이어는 소리로 장소를 담은 플레이어였다.

“와 작가님 이거…”

그제야 고개를 들어 후니다 작가를 쳐다보았다. 그는 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날, 나의 ‘무심한 귀를 위한 에피타이저: 플레이어 2024’를 입양했다.

그렇게 입양한 나의 네오 프로덕트, 나의 ‘무심한 귀를 위한 에피타이저: 플레이어’는 외출하고 돌아오면 호주머니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 놓아두는 책상 앞 전기 피아노 위에 놓여있다. 물론, 네오 프로덕트는 나와 함께 외출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주머니 안의 물건들을 꺼내 놓고 조심스럽게 플레이어를 안고 소파로 향한다. 소파에 편히 앉아 플레이어의 전원을 켠다. 주파수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면, 눈을 감고 천천히 플레이어의 다이얼을 쓰다듬어 소음과 소음 사이, 소리와 소리 사이, 장소와 장소 사이를 오간다.

— 한달 사용 후기

저녁 퇴근 후에 사용합니다. ‘플레이어 2024’는 퇴근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의 리추얼에 꼭 필요한 프로덕트입니다. 생명체가 아닌 오브젝트지만, 그 오브젝트에 담긴 장소의 기록과 기억을 소음과 소리를 오가면 찾아가는 기분은 설명하기 어려운 명상과 감상 사이의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아마도 기술적으로 가장 디지털적이고 기계적인 물건일 텐데, 가장 아날로그적이고 따듯하게 손을 내미는 그런 대상입니다.다른 장소와 시간이 담겨있을 다른 플레이어들이 기다려집니다.